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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김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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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154회 작성일 18-09-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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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규(金 明 奎)

 

1893.6.3 ~ 1977.2.10

삼문동 389

군자금모집(임시정부군자금)

애국장(1990)

 

김명규 선생은 삼문동 389번지에서 부친 김영옥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호는 야은(野隱)이다. 1912년 밀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인 1919313일 학생 전체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했고, 동래고등보통학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부산 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 받고 풀려났다.

1920년 서울에 머물던 황상규의 밀명을 받고 길림무관학교 설립 기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신의주에서 파견된 김노봉과 함께 창녕의 부호 하경석의 집에 잠입하여 군자금 3,000원을 요구하였다. 돈이 없다는 하경석을 설득하여 150원을 확보한 김명규 선생은 128일 김노봉과 함께 상경하여 모금한 군자금을 황상규에게 전달하던 과정에서 체포되었고, 부산으로 이첩되어 부산 지방법원에서 공갈 및 보안법 위반혐의로 7년형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7년 창녕 유림지서 갑비 순사부장 살해 사건에도 연루되어 도피 생활을 하였으며, 동년 1219일 창립된 신간회 밀양지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대 초부터 경남지방에서는 경남기자대회라는 것이 결성되어 시행되고 있었는데, 행사 자체가 흐지부지한 상태였다가 193043일에 신간회 밀양지회에서 행사성 사업으로 경남기자대회를 개최하면서 밀양에서 새로 창립될 때 선임된 이사 6인 가운데 정광호·박병기가 중외일보 기자로, 안병희·조용숙은 조선일

보 기자로, 김명규선생은 김희지와 함께 동아일보 기자로 명단에 올라와 있어서 그 즈음 밀양에서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자단 상무이사에 안병희와 김희지가 선임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특별히 밝혀진 것이 없고, 1990년 정부에서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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