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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김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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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149회 작성일 18-09-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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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금 연(金 錦 嬿)

 

1911.8.16.~2000.11.4.

삼랑진읍

학생운동(광주학생의거)

건국포장(1995)

 

밀양시 삼랑진이 고향인 김금연(金錦嬿) 선생은 1928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비밀결사인 독서회중앙본부 활동에 참여하였고, 192911월에는 교내의 비밀결사 조직인 소녀회를 통하여 광주학생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2611월 광주고보학생이었던 장재성이 성진회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조국의 독립과 사회과학의 연구 및 식민지 교육체제의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체를 운영했다. 그가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286월 동경 중앙대학을 중퇴하고 귀향하여 성진회의 명칭을 독서회중앙본부로 개칭하고, 각 학교별로 핵심 지도부를 조직한다는 방침에 따라 자신의 모교인 광주고보는 장재성 자신이 맡고, 광주농업학교는 문승수, 광주사범학교는 임종근, 광주여자고보는 자신의 여동생인 장매성을 조직책으로 하는 학교별 독서회를 결성하여 학생들을 조직하고 이론적으로 훈련시켜 항일독립운동을 추진해 나가게 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192811월 초순, 광주여고보에서는 장매성의 주도로 독서회중앙본부의 산하 조직으로 같은 학교 학생 장경례·박옥련·남협협·고순례·이금자 등과 함께 조국의 독립과 자유 쟁취, 여성 해방을 목적한 항일학생결사 소녀회가 다시 조직되었다.

여기에 김금연 선생도 박계남·박채희·박현숙·암성금자·김귀선 등과 함께 동지로 추가되어 항일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그 후 이들과 함께 학교 내외에서 동지를 포섭하는 한편, 매월 한 차례 연구회를 개최하고 동 회원들과 함께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하여 30원을 출자하는 등 항일투쟁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11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금연 선생을 비롯한 소녀회 멤버들은 한 손에는 약과 붕대를, 한 손에는 주전자를 들고 남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도와 활동하였다.

이듬해인 1930115일 동 회원인 광주여고보 이광춘이 일제의 식민교육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백지동맹을 단행해야 한다고 연설한 것을 계기로 이에 가담하였다가 일본경찰에 피체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10개월이 넘은 1930929일 비밀결사 관련으로는 처음으로 소녀회 관련 11명에 대한 공판이 광주 지방법원에서 시작되었다. 재판부는 여학생들의 인적 사항을 물어본 뒤 이번 사건의 사안은 공안을 방해할 염려가 있으므로 방청을 금지한다고 선언하여 그나마 허락을 받고 들어갔던 비밀결사 단원의 가족들과 신문기자들은 재판이 열린 지 5분도 못되어 법정 밖으로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

우여곡절 끝에 끝난 이날 재판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등의 이유로 장매성이 징역 2년을 언도받고 김금연 선생을 비롯한 10명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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