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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권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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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144회 작성일 18-09-2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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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잠 술(權 岑 述)

 

1898.7.1.~1965.8.31.

내이동 670

국내항일(임시정부군자금)

애족장(2011)

 

권잠술 선생은 189871일 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670번지에서 아버지 권종호(權宗鎬)와 어머니 황옥이(黃玉伊)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7세 때 마을의 서당에서 한문을 깨우쳤고, 12세인 1910년 을강 전홍표 선생이 교장으로 민족교육을 실시하던 사립동화학교에 입학하여 김소지·노재석·최수봉·김상윤·김희백 등 친구들과 함께 신학문을 교육 받았다. 동화학교를 졸업한 뒤 부친을 도와 농사를 짓던 선생은 비교적 어린 나이인 16세 되던 해인 19145월 부북면 위양리 출신 설경도(薛敬道)의 장녀 설만수(薛萬守)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1919313(음력 212)에 일어난 밀양만세운동은 동화학교 교장 전홍표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윤치형·윤세주·김상윤·김소지·노재석·설만진·정동찬 등 선생의 친구들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처자를 둔 가장의 입장이라 만세의거의 주역으로 직접 가담하지 못했음을 늘 부담 스러워했다.

1년 뒤 같은 입장에 있던 동갑내기 홍재문과 의기투합하여 192010월부터 19215월 사이, 밀양군 부북면 사포리 출신부호 안홍원으로부터 상해 임시정부 군자금에 소요될 자금 5만원을 출연토록 강요했다가 3천원을 강취한 사건으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강도 혐의로 구속된 선생은 1921630일 부산 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21826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7년형으로 감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대구형무소에서 행형성적이 우수하였다 하여 수형생활 47개월 13일만인 1926215일 가출옥되었다. 그러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때 구타와 가혹한 매질,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왼쪽 코에 알러지가 생겨 고름을 짜내는 등 고통을 겪었다. 결국 골수암으로까지 악화되어 방사선치료까지 받다가 유명을 달리하였다.

출옥 후 건강이 나빠 초야에 묻혀 농사일에만 전념하면서 망국의 한을 달래던 선생은 1941년에 아내마저 병고로 잃자 더욱 실의에 빠졌으나 친구들의 주선으로 194379일 김덕순(金德順)과 재혼을 한 뒤 얼마 동안 생기를 찾았다. 그러나 1946년부터 무안면 중산리에서 산판(숯가마)을 경영하다가 사기를 당했고, 6·25전쟁 중 차남인 이수(貳守)마저 전사하여 비통해했다.

평소 선생은 반일감정이 강해 식솔들이 절대로 일본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혹 실수로 일본단어만 중얼거려도 대노하였다.

1955년부터 밀양 내이동에서 밀양여인숙을 경영하였는데, 동화학교 동기생들이며 3·13밀양만세의거의 주역들인 김소지·이장수·노재석·김희백 등과 자주 자리를 하며 시국에 대한 걱정과 자녀 훈육에 관하여 담소를 나누다가 1965831일 일본 경찰에 의한 고문 후유증으로 발병된 골수암으로 타계하였다. 슬하에 43녀를 두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11년 선생에게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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